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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금리 5% 시대③] 일본은 어떻게 세계 최대 부채국가를 버텨왔나

국채금리 5% 시대 3부 일본 국가부채와 금리 정상화를 상징한 일러스트

GDP의 200%가 넘는 정부부채에도 위기가 없었던 이유…저금리·국내 자금·일본은행이라는 ‘세 개의 방파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비교 대상으로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의 정부부채는 미국보다 훨씬 크다. IMF에 따르면 일본의 일반정부 총부채는 2026년 GDP의 약 20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같은 기준 정부부채가 2026년 GDP의 약 126%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차이다.


그런데 일본은 수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부부채를 가지고 있었지만 전형적인 국가부채 위기를 겪지 않았다. 국채금리가 폭등하면서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지도, 외환위기를 겪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본 국채금리는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질문은 이번 연재의 핵심인 “국가의 빚은 누가 감당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일본의 정부부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26년 6월 말 기준 일본 중앙정부의 국채·차입금·정부단기증권을 합한 채무잔액은 약 1,346조7,000억 엔에 달했다. 이 가운데 정부채권만 약 1,211조7,000억 엔이다.


IMF 기준 일반정부 총부채는 GDP 대비 2022년 227.8%에서 2025년 207.0%, 2026년 203.1%로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주요 선진국 가운데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일본 정부부채 관련 지표규모·비율
중앙정부 채무잔액약 1,346.7조 엔
이 가운데 정부채권약 1,211.7조 엔
IMF 일반정부 총부채/GDP 2022227.8%
2025년207.0%
2026년 전망203.1%
2031년 전망약 193%

자료: 일본 재무성, IMF.


표면적인 숫자만 보면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국가부채 위기를 겪었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유는 부채의 구조에 있다.


첫 번째 방파제는 ‘엔화로 진 빚’이었다

국가부채 위기는 단순히 빚이 많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통화로 빚을 냈느냐가 중요하다. 일본 정부의 국채는 기본적으로 엔화로 발행된다. 일본 정부는 세금을 엔화로 걷고, 일본은행은 엔화를 발행한다.


따라서 달러나 유로 같은 외화가 부족해 원리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신흥국형 외채위기와 구조가 다르다. 자국 통화가 급락하면 외화부채의 실질 부담이 폭증하는 구조와 달리 일본은 자신의 통화로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안전장치였다.


두 번째는 일본 국내에서 그 빚을 받아줬다는 점이다

미국은 세계 전체를 대상으로 국채를 판매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성격이 달랐다. 일본 금융시스템 내부에 막대한 저축이 존재했다. 가계가 은행에 예금을 맡기고, 은행·보험사·연기금이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을 국채에 투자했다.


가계 저축 → 은행·보험·연기금 → 일본 국채 매입 → 정부 재정지출

이 구조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일본의 오랜 경상수지 흑자와 높은 금융자산 축적도 있었다. IMF도 일본 국가부채 위험을 평가하면서 깊은 국내 투자자 기반을 중요한 완충요인으로 지적한다.


세 번째 방파제는 일본은행이었다

일본의 부채 구조를 완성한 것은 일본은행이다. 2013년 이후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규모 국채 매입을 실시했다. 양적·질적 금융완화(QQE),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수익률곡선통제(YCC)가 이어졌다.


2026년 8월 말 기준 일본은행이 보유한 일본 정부증권은 약 519조9,000억 엔이었다.


일본은행 주요 자산2026년 8월 말
일본 정부증권약 519.9조 엔
일본은행 총자산약 644.7조 엔
정부증권 비중약 81%

자료: 일본은행.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고 금리가 오를 조짐을 보이면 일본은행이 국채를 매입했다. 국채 가격이 올라가고 수익률은 내려갔다. 정부는 낮은 금리로 계속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GDP의 200%가 넘는 빚도 버틸 수 있었다

국가부채에서 중요한 것은 원금 자체보다 매년 부담해야 하는 이자다. 부채가 GDP의 200%라 하더라도 평균 금리가 0.5%라면 단순 계산상 이자부담은 GDP의 약 1%다. 반대로 부채가 GDP의 100%라도 평균 금리가 5%라면 이자부담은 GDP의 5%가 된다.


따라서 부채비율 × 평균 조달금리가 국가재정의 실질적인 부담을 결정한다. 일본은 부채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것이 일본 재정의 가장 큰 비밀이었다.


또 하나의 방패는 ‘긴 만기’였다

IMF에 따르면 일본 정부부채의 평균 잔존만기는 약 9.5년이다. 시장금리가 오늘 1%포인트 올라도 전체 국가부채에 내일부터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부터 새로운 금리로 차환된다.


평균 만기가 길면 금리 상승의 충격이 정부 재정에 전달되는 속도가 늦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만기가 돌아온다는 약점이 있다.


일본의 공식이 이제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의 구조는 낮은 성장률 → 낮은 물가 → 초저금리 → 낮은 국채금리 → 높은 정부부채 유지 가능이라는 연결고리로 작동했다.

그러나 일본은 오랫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인플레이션을 다시 경험하고 있고 임금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 정상화를 진행하고 있으며 국채금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9월 일본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3%선을 넘어섰다. 9월 24일 3.075%, 10월 1일 3.11%까지 상승했고 10월 2일에도 3.05% 수준이었다. 일본 국채시장에서 3%는 수십 년간 ‘금리가 거의 없는 나라’였던 일본의 금융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0%와 3%의 차이는 일본에 특히 크다

부채 규모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00조 엔의 채무에 평균 금리가 0.5%라면 이자는 단순 계산으로 5조 엔이다. 평균금리가 2%가 되면 20조 엔, 3%라면 30조 엔이다.


실제 일본 정부의 국채는 만기가 다양하고 기존 저금리 채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즉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높은 금리가 오래 유지될수록 과거 저금리 국채가 높은 금리 국채로 교체되고 정부의 평균 이자율은 상승한다.


이미 2026년 예산에서 이자비용이 뛰기 시작했다

2026회계연도 일본 일반회계 예산은 약 122조3,000억 엔이다. 이 가운데 국채비는 약 31조3,000억 엔, 이자 및 할인료는 약 13조 엔으로 편성됐다. 전년도 약 10조5,000억 엔에서 약 2조5,000억 엔, 약 24% 증가한 규모다.


일본 FY2026 일반회계규모
총지출122.3조 엔
국채비31.3조 엔
국채 원금상환 등17.9조 엔
이자지출13.0조 엔
전년 이자지출10.5조 엔
증가액약 2.5조 엔
증가율약 24%

자료: 일본 재무성.


일본은행도 무한정 국채를 살 수는 없다

과거에는 일본은행이 국채를 더 사면 됐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디플레이션 국가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장기금리를 낮추기 위해 다시 대규모 국채 매입을 실시하면 물가를 잡기 위한 긴축과 정부 조달금리를 낮추기 위한 완화가 충돌할 수 있다.


2026년 들어 일본은행은 보유 국채를 급격히 늘리기보다 대차대조표를 점진적으로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5월 말 약 533조1,000억 엔이던 정부증권 보유액은 8월 말 약 519조9,000억 엔으로 줄었다.


일본 국채는 다시 시장에 가격결정을 맡기고 있다

수익률곡선통제라는 천장이 제거되면서 시장이 일본 정부의 부채를 다시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투자자는 일본 물가,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정부 재정지출과 추가 국채 발행을 함께 평가한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GDP의 200%가 넘는 부채를 가진 국가의 10년짜리 채권이라면 어느 정도 수익률을 받아야 하는가”다. 과거에는 일본은행이 이 질문의 상당 부분을 대신 답했다. 이제 시장이 직접 답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일본이 당장 위기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는 여전히 강력한 방어막이 있다. 부채 대부분이 엔화 표시이고, 국내 금융시장이 크며, 막대한 대외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국채 평균 만기도 길고 중앙은행이 필요할 경우 시장 안정화에 개입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위험은 갑작스러운 디폴트보다 다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위험은 ‘국가부도’보다 재정의 경직성이다

국채 이자가 늘어나면 정부는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여기에 고령화로 사회보장비가 구조적으로 증가한다. IMF는 일본의 의료·장기요양 관련 정부지출이 2025년에서 2040년 사이 GDP의 약 1.6%포인트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금리 상승 → 국채 이자비용 증가와 고령화 → 연금·의료·간병비 증가가 동시에 정부의 재정 공간을 압박한다.

일본 국가부채의 위험은 어느 날 갑자기 정부가 파산하는 형태보다 경제성장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정부의 선택지가 계속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다.


역설적으로 인플레이션은 일본의 빚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플레이션과 명목성장이 높아지면 명목 GDP가 증가해 부채/GDP 비율이 내려갈 수 있다. IMF는 일본의 정부부채 비율이 2026년 약 203%에서 2031년 약 193%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핵심은 r-g, 즉 금리(r)와 경제성장률(g)의 관계다. 일본은 오랫동안 성장률도 낮았지만 금리가 그보다 더 낮았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앞으로 국채금리가 명목성장률보다 빠르게 상승하면 부채 지속 가능성은 달라진다.


일본은 세계 금융시장의 ‘자금 공급국’이기도 하다

일본 보험사·은행·연기금은 미국 국채를 비롯한 해외 채권시장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왔다. 일본 국채 금리가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국채가 2%, 3%의 수익률을 제공하기 시작하면 계산이 달라진다. 일본 투자자는 환율 위험을 부담하면서 미국 국채를 살 필요가 있는지 다시 판단할 수 있다.


일본 자금의 해외투자가 줄거나 국내로 돌아오면 미 국채와 유럽 채권금리에도 상승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일본 국채금리 상승이 글로벌 금리시장 전체에 중요한 이유다.


철강산업에는 엔화보다 ‘금리 정상화 이후의 일본 내수’가 더 중요하다

철강업계에서는 일본 금융정책 변화가 나타날 때 주로 엔화 움직임부터 본다. 그러나 이번 변화에서는 환율만 봐서는 부족하다. 금리가 구조적으로 올라가면 일본의 건설·부동산·설비투자 비용 자체가 달라진다.


정부의 국채 이자비용과 사회보장비가 빠르게 늘면 인프라 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여력도 제약될 수 있다. 민간에서는 높은 금리가 부동산 개발과 공장·설비투자의 수익성 기준을 높인다.


특히 일본 철강사들이 추진 중인 전기로 전환, 탈탄소 설비, 고급강 생산설비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금리 상승은 단순한 금융비용 증가를 넘어 탈탄소 전환의 투자수익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연결고리는 일본 국채금리 → 기업 대출금리 → 건설·설비투자 → 철강 수요다.


일본은 ‘부채가 많아도 괜찮다’는 증거가 아니다

일본은 부채가 많아서 괜찮았던 것이 아니다. 매우 낮은 금리와 국내 투자자, 긴 국채만기, 일본은행이라는 특별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그 조건 가운데 하나라도 변하면 같은 부채 규모의 의미도 달라진다. 지금 일본에서 바로 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과거의 질문이 “GDP의 200%가 넘는 부채를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는가”였다면 앞으로의 질문은 “금리가 정상화된 뒤에도 그 부채를 계속 같은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가 된다.


국가부채는 정부 회계장부에 적혀 있지만 그 비용은 결국 정부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금리가 오르면 이자지출로 나타나고, 이자지출이 늘면 세금이나 지출삭감으로 돌아온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화폐가치 하락으로 국민이 부담한다. 은행과 연기금이 국채를 떠안으면 금융자산의 수익률과 자산배분을 통해 부담이 이전된다.


결국 국가의 빚은 언젠가 사회 안의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4부에서는 「정부의 빚은 결국 누구의 빚이 되는가」를 통해 증세, 정부지출 삭감, 인플레이션, 금융억압 가운데 국가가 거대한 부채를 처리할 때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국민과 기업, 금융기관에 비용을 이전하는지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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