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버블 붕괴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단순히 “부채가 많으면 위험하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빚을 지고 있고, 자산가격이 조정될 때 누가 지출을 줄이느냐다.
1990년 전후 일본에서는 기업이 부채 확대의 중심에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상승한 토지가치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렸고, 그 자금으로 부동산과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버블이 꺼진 뒤에는 이 과정이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기업이 투자보다 빚 상환을 우선하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이 위축됐고, 은행의 부실채권까지 겹치면서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다르다. 기업부채도 높은 수준이지만 일본 버블 당시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25년 말 민간신용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97.9%에 달했다. 가계신용이 GDP의 88.2%, 기업신용이 109.8%였다. 한국 경제 규모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민간부채가 가계와 기업에 쌓여 있는 셈이다.
일본은 반대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가계부채는 1990년 GDP의 약 34%에 불과했다. 당시 일본 가계는 주택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주택을 담보로 추가 차입해 소비를 늘리는 형태의 레버리지 확대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BIS는 이러한 보수적인 가계부채 구조가 이후 장기침체 과정에서 일본 가계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기업, 한국은 가계가 부채의 중심
두 나라의 차이를 숫자로 놓으면 성격이 명확해진다.
| 구분 | 일본 1990년 전후 | 한국 최근 | 특징 |
|---|---|---|---|
| 가계부채/GDP | 약 34% | 2025년 말 88.2% | 한국이 크게 높음 |
| 기업 대출/GDP | 약 111% | 기업신용 109.8% | 규모는 유사한 수준 |
| 기업 채권 등 포함 부채성 조달 | 약 128% 수준 | 기업신용에 상당 부분 포함 | 통계 정의 차이 유의 |
| 민간신용/GDP | 정의에 따라 약 160% 안팎 추정 | 197.9% | 한국도 매우 높은 수준 |
| 핵심 레버리지 주체 | 기업 | 가계+기업 | 충격 경로가 다름 |
| 주요 자산 | 토지·상업용 부동산·주식 | 주택·아파트 | 한국은 가계 자산과 직결 |
| 1차 충격 | 기업투자 감소 | 가계소비 감소 | 한국은 내수로 빠르게 전달 |
주: 일본 기업부문은 IMF가 1990년 비금융기업 대출을 GDP의 111%, 채권 등 주식을 제외한 증권부채를 17%로 집계했다. 전체 금융부채는 기타 부채까지 포함할 경우 GDP의 318%에 달했지만 이를 현재 한국의 기업신용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일본은행도 버블 붕괴 전 10년 동안 일본 기업의 대출/GDP 비율이 29%포인트 상승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부동산 관련 기업들이 은행대출을 적극 활용했다. 버블 붕괴 뒤 이들 기업은 정책금리가 내려가도 추가 차입과 투자를 하지 않고 대차대조표 복구에 집중했다.
한국은 이 구조에 가계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국 가계부채 비율 하락, 실제로 빚이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
최근 한국의 가계부채/GDP 비율이 낮아진 것은 긍정적인 신호처럼 보인다. BIS 기준 한국의 가계부채/GDP 비율은 2025년 말 88.1%에서 2026년 1분기 85.1%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숫자만 보고 본격적인 부채축소가 시작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2,019조8,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25조9,000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은 1,891조3,000억원이었다. 즉 GDP 대비 비율은 낮아졌지만 가계가 부담하는 명목 부채금액 자체는 오히려 증가했다.
따라서 최근 비율 하락의 상당 부분은 부채가 대규모로 상환된 결과라기보다 명목GDP가 더 빠르게 증가하면서 분모가 커진 효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도 가계신용이 생산적인 부문으로 연결되지 못할 경우 장기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 연구에서는 가계신용/GDP를 90.1%에서 80.1%로 10%포인트 낮추고 같은 규모의 자금을 기업부문으로 이전할 경우 장기성장률이 약 0.2%포인트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특히 부동산에 집중된 신용은 생산성 향상 효과가 제한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같은 100원의 부채라도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는 경제에 다르게 작용한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린다.
일본 기업이 부채를 줄이면 가장 먼저 설비투자가 감소한다. 공장 증설을 미루고, 기계 구입을 줄이고, 신규 사업을 연기한다. 이후 고용과 임금이 영향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가계소비가 줄어든다.
일본형: 기업부채 과다 → 기업 부채상환 → 설비투자 감소 → 고용·임금 둔화 → 소비 감소 → 경기침체
한국에서는 중간과정이 짧아질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가지고 있는 가계는 매월 원금과 이자를 소득에서 지급한다. 금리가 높아지거나 소득 증가가 둔화하면 가계가 가장 먼저 줄일 수 있는 것은 소비다.
한국형: 가계부채 과다 → 원리금 부담 증가 → 가처분소득 감소 → 소비 감소 → 내수 둔화 → 기업 매출 감소
이 때문에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는 금융시스템의 부실 여부와 별개로 장기간 내수를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집값이 20% 떨어지면 가계 순자산 충격은 20%에서 끝나지 않는다
15억원짜리 주택을 자기자본 8억원과 대출 7억원으로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주택가격이 15억원에서 12억원으로 20% 떨어져도 대출원금 7억원은 그대로 남는다. 가계의 순주택자산은 8억원에서 5억원으로 줄어든다. 집값은 20% 떨어졌지만 자기자본은 37.5% 감소한 셈이다.
이 상황에서 금리가 떨어진다고 가계가 곧바로 소비를 늘릴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주택가격 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자동차 구입이나 여행, 내구재 소비보다 대출상환을 우선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이 행동이 일본 기업들이 버블 붕괴 후 보였던 모습과 닮아 있다. 주체만 다르다.
일본에서는 기업이 “투자보다 빚 상환”을 선택했다면, 한국에서는 가계가 “소비보다 빚 상환”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반드시 더 위험하다는 뜻은 아니다
부채비율만으로 한국이 일본 버블 붕괴 직전보다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1990년 일본의 자산가격 거품은 한국보다 훨씬 광범위했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토지담보대출이 경제 전반에 퍼졌고, 상업용 부동산과 주식시장까지 동시에 극단적으로 상승했다.
IMF 자료를 보면 일본 비금융기업이 보유한 토지가치는 1980년 GDP의 73%에서 1990년 143%까지 불어났다. 반면 기업 대출도 GDP의 82%에서 111%로 증가했다. 자산가격 상승과 차입 증가가 서로를 밀어 올리는 전형적인 레버리지 사이클이었다.
현재 한국 금융기관의 자본건전성 관리, LTV·DSR 규제, 부실채권 관리 체계는 당시 일본보다 발전돼 있다. 따라서 일정 수준의 주택가격 조정이 곧바로 은행시스템 위기로 이어진다고 볼 근거는 없다. 하지만 금융기관이 버틸 수 있다는 것과 가계가 소비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국의 위험은 ‘붕괴’보다 ‘오래 갚는 경제’일 수 있다
한국 부채 문제에서 반드시 집값의 대폭락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집값이 30~40% 떨어지지 않더라도 높은 수준에서 5년, 10년 정체하고 그 기간 대출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가계는 상당 기간 소득의 일부를 원리금 상환에 사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택가격은 명목상 그대로인데 물가가 매년 2% 상승한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실질 주택가격은 내려간다. 가계 입장에서는 자산이 크게 늘지 않는 가운데 부채를 계속 상환하는 상태가 된다.
이 경우 경제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대신 소비 증가율 둔화 → 자영업 매출 둔화 → 기업 내수매출 약화 → 고용과 임금 상승 둔화 → 다시 소비 둔화라는 저성장 구조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일본식 대차대조표 불황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철강시장에는 건설부터 자동차까지 수요의 ‘속도 저하’로 전달된다
가계부채 문제는 철강업계와 멀리 떨어진 금융시장 문제가 아니다.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품목 가운데 상당수가 철강 수요와 연결돼 있다.
주택 거래와 건설투자가 둔화하면 철근·형강 등 봉형강 수요가 약해진다. 신규 주택뿐 아니라 인테리어, 가전, 상업시설 투자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받는다. 자동차 구매를 늦추면 자동차강판과 냉연도금 제품의 내수 증가도 제한된다. 기업들은 소비수요가 약한 상황에서 설비투자를 서두를 이유가 줄어든다. 이는 열연, 후판, 구조용 강재, 산업기계용 철강재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가계 소비 감소가 곧바로 철강 소비 감소와 같은 비율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수출, 조선, 방산, SOC, 반도체 설비투자 등 다른 수요가 이를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내수 관점에서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가계가 빚을 갚느라 소비하지 못하는 경제는 주택·자동차·가전·상업시설·설비투자의 성장률을 동시에 낮출 가능성이 있다.
철강사와 제강사에는 생산능력보다 국내 수요 성장률이 낮아지는 문제가 되고, 유통업계에는 재고 회전속도가 떨어지는 문제로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수요가 정체된 시장에서는 가격보다 재고가 더 중요해진다.
판매량이 줄어들면 같은 1만톤의 재고를 가지고 있어도 회전기간이 길어지고, 높은 금리가 유지될 경우 재고 금융비용은 그대로 쌓인다. 결국 철강 유통시장은 판매가격 몇 만원의 등락보다 재고회전율, 차입금리, 외상매출 회수기간, 고객 신용위험이 수익성을 좌우하는 구조로 이동할 수 있다.
일본의 기업 대차대조표 불황이 한국에서는 가계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일본은행은 버블 붕괴 후 가장 심각한 대차대조표 조정을 겪었던 부문이 기업이었다고 명확히 설명한다. 자산가격이 떨어지자 과잉부채와 과잉설비를 가진 기업들이 금리인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고, 이것이 통상적인 통화정책 전달경로를 약화시켰다.
한국에서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면 시작점은 다를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한국 가계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1990년 일본 가계와 비교해 두 배를 훨씬 넘는다. 동시에 기업부채도 GDP의 100%를 넘는다. 따라서 한국의 위험은 단순히 “가계부채가 많다”가 아니다.
가계와 기업 양쪽의 부채가 높은 상태에서 가장 큰 부채를 안고 있는 가계가 소비를 줄이기 시작할 경우 경제의 내수 기반 자체가 장기간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한국이 일본식 장기침체에 들어갔다고 볼 단계는 아니다. 주택가격이 전국적으로 붕괴한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의 대규모 부실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채의 위치만 놓고 보면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다. 1990년 일본은 기업이 빚을 갚으면서 투자가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가계가 빚을 갚기 시작할 경우 소비가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소비 둔화가 주택·자동차·가전·건설·설비투자로 번져간다면 철강산업 역시 그 영향을 피해가기 어렵다.
다음 회에서는 “미국은 일본과 한국보다 전체 부채가 더 큰데도 왜 일본식 장기침체에 빠지지 않는가”를 살펴본다. 미국은 가계와 기업보다 정부가 부채 확대의 중심에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한국 모두와 다르다. 특히 미국의 정부부채가 미 국채금리를 높은 수준에 묶어둘 경우, 그 충격은 환율과 금리를 통해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오히려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출처: 한국은행, 일본은행, BIS, IMF,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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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요약: 일본 버블 붕괴 당시 부채의 중심은 기업이었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가계부채가 GDP의 80%대를 웃돌고 기업신용도 100%를 넘는다. 일본에서 기업의 부채상환이 투자를 줄였다면 한국에서는 가계의 부채상환이 소비를 직접 압박해 건설·자동차·가전과 철강 내수까지 장기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일러스트 설명: 도심의 고층 아파트 단지와 뒤편의 제철소·열연코일·철근 적치장이 한 화면에 배치되고, 전경에는 가계부채를 상징하는 주택담보 서류와 줄어드는 쇼핑카트가 표현된 사실적인 산업경제 일러스트. 문자·숫자·로고는 넣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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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정보원에서 「부채의 역습②」 원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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