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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두 개의 경제①] 반도체는 호황인데 왜 우리는 불황을 느끼나

수출·GDP 숫자와 가계·자영업·내수가 보여주는 체감경기의 간극 경제·금융 특별기획 5부작 | 제1부 | 2026년 10월 10일 한국 경제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반도체 수출은 기록을 갈아치우고 무역수지 흑자는 확대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도 성장하고 기업 실적은 개선되고 있다. 정부와 금융시장이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숫자만 놓고 보면 경기가 상당한 회복세에 들어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리에서 만나는 경제는 다르다. 음식점과 소매점은 매출을 걱정하고, 건설업체는 신규 공사와 자금 조달에 신중하다. 중소 제조업체와 철강 유통업체는 주문량과 재고 부담을 이야기한다. 가계는 소득이 늘어도 생활비와 이자 부담 때문에 소비를 쉽게 늘리지 못한다. 경제가 성장한다는데 왜 경제활동의 현장에서는 그 성장을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까. 그동안 경기회복은 수출 증가에서 시작해 기업 투자와 고용, 가계소득, 소비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최근 한국 경제에서는 이 연결고리가 과거만큼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수출과 기업 실적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 가계소득과 내수·고용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가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번 특별기획은 이 현상을 '한국의 두 개의 경제'라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첫 번째 편에서는 공식 경제지표와 산업현장의 체감경기가 왜 달라지는지부터 짚어본다. 1. 수출은 역대 최대, 경제성장률도 회복…숫자로 보는 한국 경제 2026년 한국 경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확대다. 산업통상부가 10월 1일 발표한 9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월간 수출액은 1,209억4,00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3.5% 증가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 수출은 약 603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수출 확대는 국민소득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실질 GDP는 전기 대비 0.6%, 전년 동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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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의 역습②] 일본은 기업, 한국은 가계…빚을 갚는 주체가 다르다

일본의 버블 붕괴가 한국에 던지는 경고는 단순히 “부채가 많으면 위험하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빚을 지고 있고, 자산가격이 조정될 때 누가 지출을 줄이느냐다. 1990년 전후 일본에서는 기업이 부채 확대의 중심에 있었다. 부동산과 주식가격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상승한 토지가치를 담보로 다시 돈을 빌렸고, 그 자금으로 부동산과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버블이 꺼진 뒤에는 이 과정이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기업이 투자보다 빚 상환을 우선하면서 설비투자와 고용이 위축됐고, 은행의 부실채권까지 겹치면서 장기침체로 이어졌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다르다. 기업부채도 높은 수준이지만 일본 버블 당시와 비교해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는 가계부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2025년 말 민간신용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97.9%에 달했다. 가계신용이 GDP의 88.2%, 기업신용이 109.8%였다. 한국 경제 규모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민간부채가 가계와 기업에 쌓여 있는 셈이다. 일본은 반대였다. 국제결제은행(BIS)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가계부채는 1990년 GDP의 약 34%에 불과했다. 당시 일본 가계는 주택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주택을 담보로 추가 차입해 소비를 늘리는 형태의 레버리지 확대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BIS는 이러한 보수적인 가계부채 구조가 이후 장기침체 과정에서 일본 가계의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기업, 한국은 가계가 부채의 중심 두 나라의 차이를 숫자로 놓으면 성격이 명확해진다. 구분 일본 1990년 전후 한국 최근 특징 가계부채/GDP 약 34% 2025년 말 88.2% 한국이 크게 높음 기업 대출/GDP 약 111% 기업신용 109.8% 규모는 유사한 수준 기업 채권 등 포함 부채성 조달 약 128% 수준 기업신용에 상당 부분 포함 통계 정의 차이 유의 민간신용/GDP 정의에 따라 약 160% 안팎 추정 197.9% 한국도 매우 높은 수준 핵심 레버리지 주체 기업 가계+기업 충격 경로가 다름...

[부채의 역습⑤] 소비가 사라지고 빚만 갚는 경제…한국도 일본의 길로 가나

장기침체는 어느 날 갑자기 경제가 멈추는 사건만을 뜻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유지하고 기업이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것처럼 보여도 소비가 늘지 않고, 기업은 투자를 미루고, 부채상환이 경제의 일상적 목표가 되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일본의 경험이 한국에 던지는 가장 큰 경고는 경기의 급락보다 회복의 지연이다. 부채의 위치가 침체의 얼굴을 바꾼다 일본 버블 붕괴 이후에는 기업이 자산가치 하락과 과잉부채를 견디기 위해 투자 대신 대출상환을 선택했다. 앞선 2부에서 살펴본 한국의 위험은 가계가 비슷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 가구가 지출을 줄여 부채를 갚는 것은 합리적이다. 그러나 많은 가구가 동시에 소비를 줄이면 상점과 서비스업, 제조업의 매출이 감소한다. 기업은 채용과 투자를 줄이고, 이는 다시 가계소득을 압박한다. 가계의 저축 확대가 모두의 저축 증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이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절약의 역설과 연결된다. 개별 가구는 지출을 줄인 만큼 재무건전성이 좋아질 수 있다. 그러나 경제 전체의 소비가 줄어 기업 매출과 임금이 감소하면 가계가 의도했던 저축 증가가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부동산 자산가치가 정체되고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는 금리를 조금 낮춘다고 소비가 즉시 살아난다고 보기 어렵다. 여기서 대차대조표 불황과 통상적인 경기둔화의 차이가 나타난다. 일반적인 경기둔화는 금리 하락이 차입과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대차대조표 조정기에는 경제주체가 돈을 빌릴 능력보다 빚을 줄일 의지를 앞세워 금리 인하의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 다만 한국 전체가 이미 대차대조표 불황에 진입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지역·소득·기업별 차이가 크다. 이자 부담은 작은 차이로도 매달 소비를 바꾼다 가상의 가구가 원금 5억원을 30년 원리금균등 방식으로 상환할 때 연 4% 금리는 월 약 239만원, 연 5% 금리는 약 268만원의 상환액을 뜻한다. 금리가 1%포인트 달라지면 월 약 29만원, 1년 약 348만원의 차이가...

[부채의 역습④] 美 10년물 5%가 한국 부동산을 흔드는 경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가 5%를 넘는다고 한국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정확히 같은 폭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두 금리 사이에는 환율, 자본 이동, 국내 국채금리, 은행채 조달비용, 예금금리, 금융당국 규제라는 여러 단계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전달경로가 특정 시점에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10년물 5%는 이미 관측된 현실 미국 연방준비제도 H.15에 따르면 2026년 10월 7일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연 5.28%였다. 같은 날 2년물은 4.77%, 30년물은 5.67%였다. 장기금리가 정책금리보다 높다는 것은 미래의 성장·물가·국채 수급·기간프리미엄 기대가 반영된 결과다. 미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장기국채 수익률이 반드시 같이 내려오는 것은 아니다. 지표 관측값 기준일 미 국채 2년물 4.77% 2026-10-07 미 국채 10년물 5.28% 2026-10-07 미 국채 30년물 5.67% 2026-10-07 미국 30년 고정 모기지 평균 7.40% 2026-10-08 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H.15, Freddie Mac. 미국 모기지 금리는 한국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상품구조가 다르므로 직접 비교하면 안 된다. 첫 단계는 자본 이동과 환율이다 미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국제투자자는 한국 채권을 보유할 때 상대수익률과 원화 환율위험을 함께 고려한다. 위험회피 심리가 강해질 때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 금리 상승의 원인이 강한 성장인지 물가 불안인지에 따라 실제 자본 흐름은 달라질 수 있다. 금리차 하나만으로 환율 방향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원화 약세는 한국에 양면적이다. 수출기업에는 원화 환산 매출액을 높일 수 있지만, 달러로 결제하는 에너지·원료·장비의 비용을 끌어올린다. 원가상승 압력이 소비자물가로 번지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여력도 제약된다. 두 번째 단계는 국내 채권시장과 은행 조달금리 국내 국고채 금리는 경제성장 전망과 한국은행 통화정책뿐 ...

[부채의 역습③] 84조달러 빚진 미국은 왜 버티나…문제는 ‘정부부채’

일본은 기업이 부채를 줄이면서 투자가 사라졌다. 한국에서는 가계가 빚을 상환하면서 소비가 위축될 가능성이 문제다. 그렇다면 가계와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막대한 빚을 진 미국이 상대적으로 경제활동을 유지해 온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미국이 빚을 갚을 필요가 없는 나라여서가 아니라 부채를 조달하고 흡수하는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84조 달러는 연방정부 빚만이 아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융계정(Z.1)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말 미국의 국내 비금융부채 잔액은 84조1,000억 달러다. 이 가운데 가계가 21조4,000억 달러, 비금융기업이 24조 달러, 연방·주·지방정부를 합한 정부부채가 38조7,000억 달러다. 비금융부채 총액은 GDP의 259% 수준이다. 제목의 ‘84조 달러’는 정부부채 단독 수치가 아니므로 구분해야 한다. 구분 2026년 2분기 말 전체 중 비중 가계부채 21.4조 달러 약 25.4% 비금융기업부채 24.0조 달러 약 28.5% 정부부채 38.7조 달러 약 46.0% 전체 비금융부채 84.1조 달러 100% 출처: 미국 연방준비제도 금융계정(Z.1), 2026년 9월 11일 발표. 반올림으로 비중 합계에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정부부채는 연방정부와 주·지방정부를 포함한 금융계정 기준으로, 미 재무부의 연방정부 총부채와 정의가 다르다. 정부의 적자는 민간의 소득이 될 수 있다 가계와 기업이 동시에 지출을 줄여 저축을 늘리려 하면 경제 전체에서는 누군가의 소득이 줄어든다. 정부가 적자재정을 통해 지출을 유지하면 그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다. 정부가 공공사업 대금을 지급하거나 이전지출을 늘리면 수령한 가계와 기업의 현금흐름을 지탱할 수 있다. 일본도 장기침체 과정에서 대규모 재정을 동원했지만, 자산가격 붕괴와 은행 부실, 기업의 부채축소를 한꺼번에 상쇄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의 차이는 재정지출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인 달러 결제 수요, 미 국채를 담보와 유동성 자산으로 사용하는 국제금융 구조, 깊은 자본시장, 기술기업 중심의 투...

[부채의 역습 ①] 일본은 왜 금리를 0%까지 내려도 살아나지 못했나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단순히 금리를 너무 늦게 내린 결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1990년 6%에서 1998년 0.25%까지 낮췄지만 경제는 빠르게 살아나지 못했다. 돈의 가격은 내려갔지만 기업과 금융기관의 행동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산가격 상승기에 빚을 늘려 투자하던 기업들은 버블 붕괴 뒤 이익이 나도 신규투자보다 부채상환을 우선했고, 은행은 부실채권을 떠안은 채 대출에 소극적으로 변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이다. 금리를 내려도 경제주체가 돈을 더 빌리지 않고 기존 부채를 줄이는 데 집중하면 통화완화의 효과가 크게 약해진다. 일본은 여기에 자산가격 하락, 은행 부실, 임금 정체와 디플레이션이 겹치면서 단순 경기침체를 넘어 장기간의 저성장 구조로 빠져들었다. 저금리로 시작된 버블…2.5% 금리가 2년 넘게 이어졌다 일본 버블의 배경에는 1980년대 중후반의 장기간 통화완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행 자료에 따르면 정책금리는 1985년 12월 5%에서 1987년 2월 2.5%까지 낮아졌고, 이 수준이 2년 넘게 유지됐다. 엔화 급등에 따른 경기둔화 우려와 1987년 블랙먼데이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완화를 지속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낮은 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일본은행 자료에 따르면 닛케이 지수는 1989년 말 3만8,000선을 넘어섰다가 1990년 초부터 급락해 약 2년 반 만에 1만6,000선까지 밀렸다. 도쿄 맨션 가격지수도 1986년 대비 1990년 정점에서 약 3배까지 올랐지만 이후 3년 동안 약 30% 떨어졌고, 2000년에는 다시 1986년 수준 부근까지 내려왔다. 시점 주요 변화 의미 출처 1985년 12월 정책금리 5.0% 엔고·경기둔화 대응 완화 시작 일본은행 1987년 2월 정책금리 2.5% 이후 2년 이상 저금리 유지 일본은행 1989년 5월 통화긴축 시작 자산가격 과열 대응 일본은행 1990년 8월 정책금리 6.0% 버블...